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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선조님의 동유기(2019. 4. 12)
2019년 4월 19일에 yjwyjw122(이장원)님이 작성하셨습니다.

 2019. 4. 12 이장원일가님 글

2019. 4. 11 연합뉴스 박상현기자의 일부 글을 인용

"곡" 선조님의 동유기(東遊記)에서 나오는
"장천"의 새로운 해설 가능성이 제시되었기에
아래와 같이 올립니다.

ㅡㅡㅡㅡㅡ 서문 중략 ㅡㅡㅡㅡㅡ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려 후기 문인인 이곡이 1349년에 쓴 동유기(東遊記)에 처음 등장하는 '장천'이라는 말은 그동안 '긴 하천'으로 해석했는데, 성류굴에서 '장천' 글자가 확인되면서 울진에 있는 하천인 왕피천의 옛 이름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류굴 명문은 신라시대 이후 정치·사회사와 화랑 제도 연구에 도움이 되는 사료로 보인다"며 "각석 명문을 실측하고 기록화 작업을 벌이는 한편, 연차별 정밀 학술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ㅡㅡㅡㅡㅡ 이하 생략 ㅡㅡㅡㅡㅡ

<<동유기에 관하여>>

고려 후기에 이곡(李穀)이 지은 기행문. 작자의 문집인 ≪가정집 稼亭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1349년(충정 1) 가을에 금강산 및 동해안 지방을 유람하고 지은 글이다. <동유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곡은 8월 14일 송도(松都)를 떠났다. 21일 천마령(天馬嶺)을 넘어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23일 장안사(長安寺)에서 천마서령(天馬西嶺)을 넘었다. 24일 회양부(淮陽府)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26일 철령(鐵嶺)을 넘어 복령현(福靈縣)에서 묵고, 27일 등주(登州)에 이르러 이틀을 머물었다. 30일 일찍 화주(和州)를 떠나 배를 타고 강안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9월 3일 고성군에 이르렀다. 4일에 일찍 일어나 삼일포(三日浦)에 이르렀다. 7일 주인과 선유담(仙遊潭) 위에서 술을 마셨다. 8일 영랑호(永郞湖)에 배를 띄웠다. 9월 9일 중양일에는 누대에서 국화술을 먹엇다. 10일에는 동산현(洞山縣)에서 잤다.

11일에는 연곡역(連谷驛)에서 잤다. 12일에는 강릉존무사(江陵存撫使) 이군(李君)이 경포(鏡浦)에서 기다렸으므로 그와 함께 경포대에 올라가 놀았다. 비 때문에 하루를 머물렀다. 이튿날 일찍 역을 떠났다.

12일에 삼척현(三陟縣)에서 묵었다. 이튿날 서루에 올랐다. 18일 옥원역(沃原驛)에서 잤다. 19일 울진에 이르러 하루 머물렀다. 21일 일찍 울진을 떠나 월송정(越松亭)에 이르렀다.

<동유기>의 일정은 작자 이곡이 말한 것으로만 보아도 철령으로부터 평해에 이르기까지 천이백 리 길이다. 8월 14일 송도를 떠나서 9월 21일 월송정에 도착할 때까지만 보아도 한 달이 훨씬 넘는 긴 여행이었다.

이 글은 일정에 따라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일종의 기행문이다. 그러나 일정의 기록에 그리 충실하지는 않은 듯하다. 자신의 감상의 유무와 장단에 따라 혹은 길게 혹은 짧게 기술하였다.

<동유기>는 기록에 있어 중점을 둔 것은 객관적 경물의 묘사가 아니다. 경물과 관련 있는 역사적, 설화적 내용과 자신의 느낌을 기록한 것이다. 이전의 몇몇 유기(遊記) 작품에 이어 후대의 많은 유기작품이 출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가정집(稼亭集)』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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