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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재발견(2018. 7. 14)
2018년 7월 14일에 yjwyjw122(이장원)님이 작성하셨습니다.

 2018. 7. 12 한산이씨서울화수회 이정원 글

 
 
《여의도 재발견》

여의도 한강공원을 자주 걷다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쉴만한 벤치와 차양시설이 있는데 디자인이 특이하다.

자세히 보고 주변의 설명문구를 보니 여의도 역사를 상징하는 디자인임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 형상을 본딴 차양막 벤치)
(비행기 조형물과 역사설명 안내판)
(여의도의 모습들)
(여태껏 타보지 못한 한강 쿠르즈)
(조형물들)
(쉴만한 물가)
(무궁화동산)
(여의도는?)

면적 2.9㎢, 인구 3만 3654명(2014)이다. 한강에 발달한 범람원으로 영등포 쪽에 작은 샛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양화도·나의주 등으로 불렸다.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은 홍수에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르던 것이 한자화 되어 여의도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 여의도계 여의도였고, 갑오개혁 때 한성부 북서 연희방 여의도계 여의도였다. 일제강점기때는 경성부 연희면 여의도였고, 1914년 율도와 함께 용강면 여율리라고 했다가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어 여의도정이라고 하였으며 1943년 영등포구역소에 속하였다. 1946년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동이 되었다.

모래땅으로 이루어진 쓸모없는 벌판이었으나, 1916년 9월 일제가 이 섬(당시는 경기 고양군 용강면)에 간이 비행장을 건설함으로써 비행기지로서의 여의도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22년 12월 안창남(安昌男)의 모국방문 비행도 이곳에서 실시되었다. 1936년 김포 비행장이 새로 건설된 후에도 여의도 비행장은 존속하였고8·15광복 후에는 미군이 접수, 한때 사용하다가 1968년에 이르러 서울특별시에 의한 윤중제(輪中堤) 축조 및 신개발 사업이 착수되었다.

착공 반년 만에 윤중제가 완성되었고 이 섬의 복판을 가로질러 마포와 영등포를 직결한 6차선의 마포대교가 1970년 5월 개통함으로써 신시가지 발전이 한층 가속화되었다.

1981년 10월 4차선의 원효대교가 준공·개통하여 여의도와 용산구 원효로 4가를 이어 놓았다. 국회의사당 ·한국방송공사·동아일보사 별관· 전국경제인연합회· 순복음교회와 각종 금융관계사, 아파트 등이 밀집해 있으며, 63빌딩·엘지(LG) 쌍둥이 빌딩 등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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