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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관람기(2018. 7. 14)
2018년 7월 14일에 yjwyjw122(이장원)님이 작성하셨습니다.

 2018. 7. 14 한산이씨서울화수회 이정원 글

 
 
《수원 華城 관람기》 2018. 7. 12

오늘은 must로 밖으로 돌아야 한다.
집안 정리를 도와주는 연변 조선족 아주머니가 오후에 오는 데다가 아내가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다니 자의 반 타의 반 자유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배낭을 짊어지고 방향을 수원으로 잡았다.
水原華城과 八達山을 돌아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1971년 대학교 2학년 시절 팔달산에 한번 올라간 적이 있었으니 45년도 넘은 세월만이다. 華城行宮은 1996년에 복원을 시작했다니 그 시절에는 당연히 없었고.

수원역에서 長安門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거꾸로 시작해서 北水門을 돌아보고 華西門을 거쳐 팔달산 꼭대기 華城將臺에 오르니 수원시내가 한눈에 보여 가슴이 탁트인다.

화성을 둘러보니 城門과 城郭, 砲樓와 敵臺, 水門과 暗門 어느 하나 허술하게 축조된 것이 없다. 한국의 성곽이 이렇듯 세심하게 디자인 되고 축조가 되었다니!

다음에는 쾌청한 날 오후에 다시 와서 석양과 함께 어울리는 풍광을 즐긴 다음 저녁 황홀한 조명을 받은 성문들을 보고 기록에 남기고 싶다.
수원 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뒤주 속에서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 자리인 화산으로 이전하고(융릉)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또한 화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필요를 절감한 수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당쟁이 극심했던 정세를 쇄신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적 신도시로 건설된 것이기도 하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2016년 1월 수원화성 일대 약 1.83㎢가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장안문)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다. 長安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瓮城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西將臺, 華城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다양한 건축물)
(화성행궁)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國事)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 조선 세종이래 역대 왕이 즐겨 찾던 곳이다. 그리고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바로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다.

화성행궁 (華城行宮)은 정조가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곳이다. 정조는 1789년 10월에 이루어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옮긴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1년간 13차에 걸친 능행(陵幸)을 거행하였다.

화성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면에서 가장 크며, 성곽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경기도기념물 65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에필로그)
몸과 마음을 살찌운 하루였는데 만보기에는 15,000보 이상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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